2009년 03월 13일
장미
새벽에 봄비 추적추적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침 창을 열었을 때 낙엽 익는 듯 습한 냄새 풍기는 비바람이 콧속을 적셨다. 창을 열면 가장 먼저 죽은 밤나무가 보이는 내 동생의 방에서 아무것도 열리지 않는 검은색 가지 끝을 보는 대신 벤자민 화분 두 덩이의 먼지 낀 잎사귀를 가만히 보았다. 그러다가 보일러를 틀고, 아침을 먹고, 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말리면서 무심코 책상 앞에 섰는데, 동생이 장난 삼아 그려놓고 내팽개친 장미 그림이 눈에 띄었다. 내가 낙서한 A4용지에 밑그림도 없이 크레파스로 슥슥 그렸을 뿐인 그 장미가, 어제는 감흥 없이 다가왔었는데도 오늘은 유난히 선물 같이 느껴졌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값진 사람은 되고 싶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무심코 그은 직선과 곡선에, 무심코 뻗은 눈짓과 손짓에 상냥하고 따뜻한 값어치가 스며있는 사람. 사랑을 해도 되는 값어치, 사랑을 받아도 되는 값어치. 걷잡을 수 없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에 수치를 끼워넣는 게 가당키나 하랴마는, 이왕 살아가는 것 쩍쩍 갈라진 사람들 가슴 노크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환영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그 값어치가 스며 있는 이 크레파스 장미 때문에, 나는 지금 행복하다.
# by | 2009/03/13 09:47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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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미 님, 파이팅이십니다//ㅅ//♡